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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임오화변)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사도'가 오픈하는 가운데 사도세자 이선은 왜 뒤주에 갇혀 죽었을까 다시 되내어 보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조선시대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가 왜 아들인 사도세자와의 관계가 틀어져 자식을 비참하게 죽이는일이 발생했을까요? 당시 영조는 경종 살해사건에도 의심을 받고 있었으며 정실 핏줄이 아니라는 여러가지 컴플랙스를 가질 수 있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 컴플렉스에 휩쌓였던 영조는 이 스트레스로 인해 사리분별..
조선시대 문명의 성격과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조선시대 문명의 성격과 실패의 원인이 무엇일까? 조선시대가 실패한 문명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될때까지 원인과 문명의 성격에 대해서 포스팅해봅니다. 조선시대의 성격으로 볼때 조선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정도전에 의해 시작된 이 문명은 이씨왕조와 썩은 관료들에 의해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조선시대 문명의 성격은 네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조선사대의 문명은 첫번째 과거제도를 통해 양반관리를 선출하는 관료사회였습니다. 두번..
반정공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이괄의난 발생과정 반정공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이괄의난 발생과정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권은 북인에서 서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친명 배금의 사대주의가 뿌리내리게 되었고 친명 배금 정책은 결국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불러 임진왜란 이후 막 수습되던 국가의 경제와 기반이 한번에 쓰러졌습니다.인조는 여주에 유배중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했고 김신국에게는 호조판서를 맡겼습니다. 김류,이귀,신경진,이서는 4대장으로 불렸고 이들은 나라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이란 400여명의..
현종과 예송논쟁,기해논쟁의 시대 현종과 예송논쟁,기해논쟁의 시대 이번 포스팅은 현종의 예송논쟁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현종은 중국에서 태어난 유일한 왕이며 후궁을 한명도 두지 않는 왕으로 유명합니다. 현종시대에 예송논쟁이란 무엇인지 현종의 시대에 힘의 균형은 어떠했는지 포스팅해봅니다. 현종은 1659~1674년에 군림했으며 1641년에 심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종의 시대는 예송논쟁의 시대라 불렸는데 이는 인조반정 이후에 병자호란과 북벌에 시달렸던 조선내부 사정이 어느정도 안정기를 맞..
인조 능양군의 무능한 업적들과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인조 능양군은 어떤사람이었을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화정을 보면 권모술수에 능하며 왕답지 않고 무능해보이는 능양군이 실제 어떤사람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실제 화정이라는 드라마에서 얼마나 역사에 가깝게 인조를 그렸는지도 모르는것이라 역사를 토대로 능양군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후대에 어떤일에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포스팅을 해봅니다.광해군 역할의 배우 차승원씨  광해군을 폐위시킨 능양군의 인조반정은 인조를 추대하는 세력..
조선 제7대왕 세조(수양대군)와 정희왕후의 무덤 광릉 광릉수목원(국립수목원)에 들렀다 조선 7대왕인 세조의왕이 광릉이라는것을 알고 왕의무덤에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어릴적 왕릉은 한두군데 갔던 기억이 있는데 흐린기억밖에 없어 이번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로 왕릉이 있었으며 좋았을텐데 광릉의 스케일때문에 한참을 걷고 오르막을 올라야 세조와 정희왕후를 뵐 수 있었습니다.광릉의 위치는 광릉수목원이라 불리는 국립수목원과 800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매우 가깝죠? 수목원을 들르면서 돌아오는길에 들렀습..
광해군 저평가의 원인 그리고 광해군은 정말 대동법에 힘을 실어줬을까? 광해군은 어떻게 알려져있나?역사는 암기식 공부를 하는것이 아니라 질문을 계속 던지는식의 공부를 해야합니다. 질문을 던져 토론을 통해 살이있는 역사공부를 해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또한 재밋는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을 계속 외우기 보다는 왜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지 이야기로 기억하는 방법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광해군은 재조명되는 왕으로 머리가 좋고 유능하고 대동법을 실시하여 민생을 안정시켰으며 외교의 달인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광해군의 폐륜정치에 저항한 한음 이덕형 이야기 어릴적 전래동화로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들은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애가 좋은 친구였다는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오늘은 기억도 되심을겸 광해군의 폐륜정치에 저항했던 한음 이덕형에 대해서 포스팅해봅니다.오성과 한음?오성은 이덕형과 과거장에서 만난 이항복을 말합니다. 이항복은 이덕형보다 5살이 많으며 이항복의 작위명이 오성부원군이었기 때문에 오성으로 불리게 되었고 한음은 이덕형의 호가 한음이기 때문에 한음으로 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