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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조선 제7대왕 세조(수양대군)와 정희왕후의 무덤 광릉


광릉수목원(국립수목원)에 들렀다 조선 7대왕인 세조의왕이 광릉이라는것을 알고 왕의무덤에 찾아가보기로 했습니다. 어릴적 왕릉은 한두군데 갔던 기억이 있는데 흐린기억밖에 없어 이번에 한번 다녀왔습니다. 주차장에서 바로 왕릉이 있었으며 좋았을텐데 광릉의 스케일때문에 한참을 걷고 오르막을 올라야 세조와 정희왕후를 뵐 수 있었습니다.



광릉의 위치는 광릉수목원이라 불리는 국립수목원과 800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매우 가깝죠? 수목원을 들르면서 돌아오는길에 들렀습니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입니다. 위에 보이는 역사관과 화장실 그리고 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는 중간에 집이 보이는데 너무 더워서 들르는걸 깜빡해버렸습니다.


광릉의 위치





역사문화관에 내부에는 광릉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되어있었습니다. 패기의 왕답게 왕릉의 스케일도 컸는데 왕릉을 본 후 왜 저는 썰매장이 생각나는지...



올라가는 길목에는 광릉의 설명이 자세히 적혀져있는곳들이 있습니다. 광릉은 산림욕이 가능할정도로 많은 수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그 사이를 뚫고 열심히 올라가야 세조와 정희왕후를 뵐 수 있습니다.



세조의 유훈에 따라 광릉은 능 내부에 석실을 만들지 않고 능 내부와 관의 사이를 석회로 메워 다지는 회격 방식으로 조성하여 소요 비용과 인력을 절약하였고 또 같은 이유로 봉분 둘레에 둘려 세운 네모난 돌인 사대석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사대석에 새겼던 12지신을 난간석 기둥에 새겨넣게 되었으며 이러한 회격을 사용하여 능 내부를 조성하는 방식은 세조의 광릉 이후 조선왕릉 조성의 새로운 규제가 되었습니다.



나무들이 엄청나게 큼직큼직하더군요. 광릉지에 따르면 광릉은 동대문 밖 동쪽 60리 양주 동쪽 41리 주엽산 아래 자리를 잡았고 풍수 사상에 따라 왕릉 뒤편에 운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정남향의 세조릉은 마주보는 백령산을 안산으로 삼았으며 남서향의 정희왕후릉은 천령산을 안산으로 마주하였다고 합니다.



광릉은 세계문화 및 자여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세계유산 광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우 ㄴ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30도가 되는 땡볕에서 정희왕후릉을 다녀왔습니다. 저만 올라갔다왔는데 정말 힘들더군요 ㅜ.ㅜ



세조의 유훈에 따라 광릉은 능 내부에 석실을 만들지 않고 능 내부와 관의 사이를 석회로 메워 다지는 회격 방식으로 조성하여 소요 비용과 인력을 절약하였고 또 같은 이유로 봉분 둘레에 둘려 세운 네모난 돌인 사대석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사대석에 새겼던 12지신을 난간석 기둥에 새겨넣게 되었으며 이러한 회격을 사용하여 능 내부를 조성하는 방식은 세조의 광릉 이후 조선왕릉 조성의 새로운 규제가 되었습니다.



위 사진의 앞계단부터는 출입금지라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수백년을 이어져온 이 유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세조의 명으로 능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지어져 지속적으로 비바람에 깎인 구조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광을이 있어서 이곳을 광릉숲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광릉의 부속림으로 왕릉 사방 15리의 숲을 조선말기까지 출입을 막고 철저하게 보호했다고 합니다.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500여년 이상을 철저히 보호되고 관리되어 역사적,문화적,학술적 중요한 가치를 지닌 광릉숲이 된것입니다.



우거진 수풀을 담으려다 빛 플레어 현상을 담았네요. 세조의 릉을 다녀오고 싶었으나 현재 세조의릉은 출입금지하여 통제상태에 있어 못갔습니다. 위에 사진은 정희왕후릉의 사진입니다. 올라가서 구조물을 정면으로 왼편은 세조,우른편은 정희왕후릉입니다. 일부러 광릉을 찾기보다는 광릉수목원(국립수목원)을 다녀가는김에 들르면 딱 좋은곳으로 생각되네요. 패기의 군주였던 세조와 정희왕후를 만나러 한번 가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