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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반정공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이괄의난 발생과정

반정공신들의 권력다툼으로 일어난 이괄의난 발생과정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권은 북인에서 서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친명 배금의 사대주의가 뿌리내리게 되었고 친명 배금 정책은 결국 정묘호란,병자호란을 불러 임진왜란 이후 막 수습되던 국가의 경제와 기반이 한번에 쓰러졌습니다.


인조는 여주에 유배중인 이원익을 영의정에 임명했고 김신국에게는 호조판서를 맡겼습니다. 김류,이귀,신경진,이서는 4대장으로 불렸고 이들은 나라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이란 400여명의 군관을 이야기 합니다. 반정공신 33명은 세등급으로 나누어 등급별 공신으로 분류했고 이것도 서로 공정치않아 서인끼리도 다툼이 생겼습니다.


이 서인들로 이루어진 반정세력은 애초에 백성을 위한 생각은 없었기에 반정에 성공한뒤에도 같은편끼리 다투는 이괄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이괄은 인조반정에 가담해 거사의 작전 지휘를 맡아 반정에 성공하게 되는 인물인데 이괄은 반정군 대장 임무를 맡았지만 김류에게 대장의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큰 공을 세웠지만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2등공신으로 봉해졌고 한성판윤이었다가 평안병사 겸 부원수가 되어 영변으로 가게 됩니다. 공을 세운것에 비해서는 2등공신으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내심 불만을 가졌을것이라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이괄이 평안 병사로 부임하던 당시는 후금의 누르하치가 명을 정복하는 시기라 언제 조선을 침략할지 몰랐기 때문에 북방을 수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북방수비로 경험이 풍부한 이괄을 보냈는데 이괄은 꽤 많은 병력을 확보하게 되지요. 인조반정때 반대세력을 경계하던 공신들은 이괄을 이용해 남아있는 광해군친분있던 북인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이괄의 아들인 이전,한명련,정충신등이 변란을 꾀하고 있다고 인조에게 고변을 했는데 이는 문회,허통이 고변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괄을 신임하던 인조는 쉽게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사끝에 무죄가 밝혀지자 문회,허통을 사형시켜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서인세력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였고 허위사실임이 밝혀졌는데도 아버지인 이괄을 부원수직에서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능한 왕에 무능한 서인들까지 거의 나라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썩어빠진 정부였고 조선 최악의 부패정부라고 해도 반론할 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능한 인조는 이괄을 아들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한양압송을 위한 영변을 보냈고 이것이 화근이 되어 이괄은 역모로 몰고있는 서인세력에 분개를 하고 일을 치게 됩니다. 이로인해 이괄의 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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