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중종과 청빈안씨 소생인 덕흥군의 셋째아들로서 방계혈통으로 국왕에 오른 첫 번째 군주였습니다.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는 군주였기 때문에 우유부단하고 도량이 넓지 못했습니다. 사림파의 동서분당은 선조의 기질과 많은 관련이 있는 셈이었죠. 명종 시기에 훈구파를 제거하는데 앞장선 심의겸의 이조전랑 추천권으로 불거진 사림파의 동서분당은 조선시대의 후기 역사를 가름하는 거울이었습니다.
이조전랑이 중요한 이유는?
이조전 랑은 정 5품의 정랑직인데 자신의 후임자를 천거할 수 있는 자대낭천권이 있었으며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3사의 대간을 선발하는 통천권이란 권한이 있었습니다. 특히 통천권은 의정부의 3정승까지 견제할 수 있는점에서 요직가운데 매력있는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천권과 통천권은관리를 추천하거나 천거할 때 사용되던 권리로 낭천권과 통청권이라고 합니다. 사헌부(관리,감찰),사간우너(간원,탄핵),홍문관(왕의 국정자문)은 조선시대의 언론기관으로 정사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감찰기능을갖춘 기관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으로 이를 3사로 불렀습니다.
붕당이 분열하는 원인과 과정은?
선 조때에 중앙권력을 장악한 사림들은 척신들의 제거에 적극적인 신진사림과 소극적인 기성 사림으로 입장의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이때 관리의 선발권을 가진 이조전랑의 자리를 두고 기성 사림은 심의겸을 신진사림은 김효원을 지지하면서 기성 사림은 서인,신진 사림은 동인으로 갈라서고 사림은 드디어 동서 분당이 되었습니다.
심
의겸의 이조전랑을 김효원이 반대하고 훗날 김효원이 천거되자 심의겸이 반대하면서 중앙조정은 두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처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자 김효원을 지지하는 젊은 사림들이 심의겸을 공격하면서 갈등은
더해갔습니다. 구세력을 대표하던 심의겸을 지지하는 세력은 서인으로 기호학파와 노론,소론이었습니다. 신진세력의 구심체였던 김효원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은 영남학파로 북인과 남인으로 구성된 동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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