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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홍경래의 난 그리고 민란의 시대



민란의 시대의 시작


19세기는 전국에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정조 연간의 신해통공등의 정책으로 의주상인 임상옥(송상,만상,경상,래상)등 상공업자본이 형성되면서 근대화의 전화점을 맞이했지만 세도정치의 출현과 삼정의 문란으로 개혁의 꿈은 사라지고 백성의 삶은 더욱 고통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예전에 의주상인 임상옥의 이야기인 드라마 상도가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보고싶은 드라마 입니다. 세상이 썩어가고 세도정치의 매관매직으로 해먹을 사람들은 정해있고 더불어 전염병에 흉년까지 정말 백성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은 살기 힘들어지자 여기저기에서 봉기하여 일어나는 민란의 시대가 개막이 되었는데 이것을 홍경래의 난이라고 합니다.





1811년 12월에 평안도를 거점으로 홍경래는 서북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안동 김씨 정권의 타도 및 도참설에 근거한 진짜 군왕의 추대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홍경래는 평안도 가산 다복동의 광산을 근거지로 세력을 확보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치밀한 준비 끝에 거사를 하였으며 봉기 초반에 가산,곽산,정주,선천,철산 등 청천강 북쪽을 지배하였으나 관군의 반격으로 박천,송립,곽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정주성으로 모여들어 100여일에 걸쳐 저항하였으나 1812년 4월 19일에 정주성이 함락되고 홍경래는 전투 중에 죽음으로 반란은 실패하게 됩니다.



민란은 실패하게 되지만 이때부터 근대화를 지향하는 조선의 시대정신은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의 반란으로 표출이 되었고 개화사상과 동학,윚어척사운동은 서서히 그 싹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위정척사파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외세와 외래사상등을 배격하는 사람들로 나중에 의병활동으로 맥락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세도정치 60년을 생각하면 얼마전에 상영한 영화 군도가 생각납니다. 비록 왕은 틀리지만 정조이후로 왕의 정치는 끝났다고 생각되므로 그당시의 백성의 힘든 삶을 알려주는 영화로 흥미롭게 감상한 영화로 기억합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하고도 정말 비슷한 점이 많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