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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신미양요의 격전지인 강화도의 덕진진과 덕진돈대 탐방기

이번에는 전에 다녀온 초지진 옆에 있는 강화도의 포대인 덕진진에 대해서 포스팅 합니다. 덕진진은 강화도 입구에 있는 초지진의 다음 포대로 신미양요때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덕진진은 조선시대 강화해엽을 지키는 요충지로 원래는 수군에 속한 진이었습니다. 덕진돈,남장포대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돈대와 포대는 숙종 5년에 설치했습니다. 병인양요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을 틈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했었습니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는 무주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있었지만 1977년에 모두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위에 사진은 광성보 내에 있는 용그림입니다.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광해군 10년에 고려시대의 성을 보수하고 광성보를 설치하였으며 그후 숙종때 이르러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고 합니다.


광성보 내부에는 밖에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망원경은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덕진돈대를 강제로 점령한 미국군사들이 주변 지형을 살펴보는 장면입니다. 덕진돈대 가는길에 세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그것을 촬영해왔습니다.

덕진돈대를 강제 점령한 후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입니다. 덕진돈대의 지금 가는 반대편에서 그린 사진입니다.

덕진진 앞쪽 해안가에 경비를 서고 있는 해군장교 1명과 수병 5명 염하강 건너편으로 김포의 덕포진 일대와 손돌의 묘가 있는 언덕이 바라보입니다.

포가 설치되어있는 남장포대 입니다. 남장포대는 덕진진의 소속된 포대로 강화의 8개 포대중 하나로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 8년인 신미양요때 덕진돈대와 함께 미국 아세아함대와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며 성첩과 시설물이 그때당시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1977년에 다시 복원하여 유지하고 있습니다.

덕진돈대로 가는길 중간에 작품을 만드는분을 봤습니다.



아이들이 매우 관심있어 하는 곳이었습니다. 모두 돼지코를 하고 있는 작품을 만들고 계시더군요.



덕진돈대로 향하는 길입니다. 경사가 있고 가는길에 계단으로 되어있어 약간 힘이 듭니다. 하지만 못올라갈 정도는 아니니 산책기분으로 다녀오시면 될것 같습니다.


덕진돈대는 덕진진의 2개 돈대중 하나로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지이기도 합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국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파괴되었었습니다. 위와 마찬가지로 1977년에 모두 복원하였습니다.



덕진돈대 바로 옆에 길을 따라 살짝 내려가면 바다가 보이는곳에 경고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경고비는 고종 4년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엤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입니다. 경고비에는 해문 방수타국선신물과 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 강화도에 복원된 덕진돈대 입니다. 위에 신미양요때의 그림과 거의 일치하는 부분이지요? 신미양요,병인양요때 프랑스와 미군의 침략을 받아서 역경을 이겨냈지만 그 전쟁들은 결코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는 침략일 뿐이었습니다. 이곳을 돌아보며 힘들었던 그시절의 조상들의 고초를 한번 되세겨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