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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 역사

훈구파와 사림파 그 정치적 뿌리는 무엇일까?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뿌리를 찾아보려면 고려말기로 돌아가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고려말에 신흥 사대부들은 정치적인 입장에따라 두가지로 나뉩니다. 고려를 계속 지켜나가려는 정몽주와 길재등의 고려사수파와 고려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을 개국하려는 정도전,조준등의 조선혁명파로 나뉘어집니다.


고려사수파


고려사수파는 조선개국에 불참을 하고 향촌에 은거하며 학문연구와 후배양성에 집중하게되여 이것이 사림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고려사수파 정몽주,이색,길재



조선혁명파


조선혁명파는 여러차례 정치적 격변기에 공신으로 책봉되고 나아가 외척이 되거나 왕실과 공신간의 혼맥을 통해 점차 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왕실자제나 종친들의 관리임용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드디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훈구파로 성장하게됩니다.



훈구파에 대해서 조금더 보강설명을 하자면 대표적인 훈구파로 한명회는 자신의 사위인 자산군을 왕위에 올리려고 적극 추천합니다. 월산대군이 나이도 많고 장자였지만 자신의 사위를 추천하게 되면서 훈구파 세력의 성장과 토대가 마련된것입니다.


대표적인 조선개혁파 정도전


성종이 즉위한 이듬회에 한명회를 포함한 훈구대신들과 그의 자손들이 좌리공신이 되었는데 이중에서 한명회,신숙주,정인지는 정난공신,좌익공신,익대공신에 이어 좌리공신이 되어 4차례에 걸쳐 공신이 되는 특권을 누립니다. 정산공신의 주역들과 그의 자손들 3대에 걸친 무리들이 중앙권력을 독점하니 역사에서는 이를 훈구파라고 불렀습니다. 훈구파들은 왕실의 마지막 권력자인 구성군마저 탄행하여 유배시키고 경국대전을 편찬하여 법령으로 종친의 관리등용을 금지시켜 실질적인 권력을 모두 차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