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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근대 역사

한국 근대사의 이정표 갑오개혁,을미개혁에 대한 정보



갑오개혁(1894)과 을미개혁(1895)의 의미는 갑오년에 시작해서 을미년에 개혁을 끝냈다고 해서 갑오,을미개혁이라고 합니다. 갑오개혁이 중요한것은 지금 우리가 하고있는 근대사의 의식주는 이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모두 바뀌게 되었는데 일단 기존에 있던 모든 의식주의 방법이 이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바뀌게 됩니다. 어떤내용이 바뀌는지 알아보겠습니다.일본에 간섭이 있었지만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과거시험이 사라지다


과거시험은 고려시대 광종때 시작되었는데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시험은 형식적으로 변했으며 청탁에 의해 썩어빠져 갑오개혁때 시험을 없애게 됩니다. 이후에 공무원시험이 치뤄지게 되기는 합니다.



도량형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쓰는 단위가 지역별로 틀렸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보통 예전에 길이를 잴때 '한자'라고 하면 지방각지의 '한자' 의 크기가 서로 틀렸었다고 하는데 도량형을 퍼트려 동일한 단위를 사용하게 됩니다.



고문과 연좌법의 폐지


현재는 고문을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고문이 있었습니다. 단계별로 코스가 있는데 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의 단계별로 벌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이런것들이 갑오개혁 기준으로 바뀌게 됩니다. 원래 태형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유배가면서 죽는 코스가 우리나라의 형벌의 코스였지만 갑오개혁이후는 고문에 해당하는 형벌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연좌법은 사돈에 팔촌까지 노비만들고 삼족을 멸하는것이 연좌법인데 이것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크지는 않지만 인권을 바로 세우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조혼의 금지


조혼의 유례는 고려시대때 원나라에게 80년간 우리나라가 지배를 당하게 되죠. 이때 원나라인 몽골에서 우리나라 여자들을 잡아갔었는데 이때 잡혀가지 않는 방법으로 아주 어릴때 미리 결혼을 시켜 몽골로 대려가지 못하게 하는것이 유례가 되어 조혼이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조혼도 갑오개혁을 기준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은 지금 과거와 현재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입었었던 한복은 일반 옷과 정장으로 바뀌는등의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랫만에 설민석선생님의 감오개혁과 을미개혁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몇자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