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조선 역사

인조반정의 명분 과연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명나라에 의리를 저버리는 일인가?


요즘 한창 재평가 되고 있는 광해군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서인 세력을 등에 업은 인조는 광해군이 명을 배신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이유로 반정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 인조반정인데요 인조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내세운 서른가지 이상되는 명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저버렸으니 바로잡는다는 의미의 '친명배금' (명나라와 친목을 도모하고 금나라와 멀리한다.) 이었고 두번째는 선조의 정비인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그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살해하여 인륜을 어겼다는 것 하여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이야기한 친명배금은 갔다 붙이기 식의 주장이었습니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주장인데 어차피 명이든 후금이든 다른 나른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모두가 사대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이 후금과 가까이 했다고 해서 후금을 사대했다고 볼 수 는 없는것이죠. 광해군은 명과 후금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가장 노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후금과 싸우던 명의 요청으로 파병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비밀 교지를 내려 후금과 대적하지 말고 시세를 보아 판단하라고 명합니다. 그 이후에도 광해군은 계속 중립노선을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것을 보아 명분도 실리도 없는주장이 인조반정의 주요 명분이었던 첫번째 친명배금의 주장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근본적으로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었고 당시 명이 기울고 청이 새롭게 떠오르는 당시 상황에서 광해군은 외부와 최대한 충돌을 방지하고 나라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일에 노력했던 것입니다. 후에 광해군은 위협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폭군으로 평가받아왔지만 임진왜란의 전란 복구와 민생안정에서는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한 군주로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요즘 광해군과 인조반정에 대한 글들을 보게되면 인조반정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사망도 요즘 다뤄지고 있는데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후에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되었다면 하는 바램의 글들도 여럿보았습니다. 조선사에서 가장 최악의 군주인 인조가 왕이 되지 않고 광해군과 소현세자등의 애민을 중시한 사람들이 왕이 되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에 변화가 있었을지 아니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는 바램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