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고려 역사

고려 광종 왕권강화 방법 그리고 최초 과거제도


고려 광종때 세워진 은진미륵


광종은 3대 정종과 함께 왕건과 신명왕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동모형제로 정종을 뒤이어 왕이에 올랐습니다. 광종도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만큼 신하들의 입김이 강해 왕권이 취약하였습니다. 따라서 광종은 신하들인 유신성,장평달,최지몽,서필 등의 도움으로 4단계에 걸쳐 왕권강화책을 조심스럽게 추진하였습니다.


왕권강화의 첫번째로는 호족들을 안심시키는 전략이었는데 광종은 즉위한 후 7년 동안 호족들을 안심시키고 무마하는 정책으로 공신전인 예식을 통일하고 공신의 등급과 예우법을 정하였고 호족들은 광종의 예우책에 현혹되어 공신명부가 자신들의 목줄을 겨녕한 살생부란 사실을 관과하였습니다.



두번째로는 호족들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이었는데 사노비를 해방시켜 양민으로 만드는 노비안검법의 단행이었스빈다. 사노비의 대부분을 소유한 호족들은 보유인력의 손실과 이애ㅔ 따른 경제력 약화를 초래하였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경제정책으로 빈민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재단인 제위보를 창설하고 빈농을 보호하고 토지개간을 장려하는 조세율을 정하였습니다.


왕권강화의 세번째는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공신들의 입지를 줄이고 친위세력을 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광종은 후주출신의 쌍기를 통해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제술과,명경과,잡과의 시험을 치루게 하였습니다. 공신들은 유일이나 음서제를 통해 여전히 중앙정부에 자제들을 진출시킬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비율이 낮아졌고 충효를 강조하는 유생들은 과거제도를 통해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왕권을 지켜주는 보루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네번째 단계로는 호족들을 숙청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작업이었는데 호족들은 숙청한 광종은 북송이 건국하는 연호를 광덕에서 준풍으로 바꾸고 개경을 황도,서경을 서도로 고쳤으며 관리들의 공복제도를 수립하여 국왕의 절대적 지위를 수립하였습니다. 고려역사에서 광종에 기억될만한 것들을 정리하였는데 이중에 가장 중요한것은 최초로 과거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공무원시험의 일종으로 인재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중간중간에 변질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사람을 등용하는 수단이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