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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시대

당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략과 안시성전투

당태종 이세민의 입상


수나라를 뒤이어 일어난 당나라는 내정을 다스리기 위하여 고구려와 화친을 구하였다. 마침 고구려에서는 강경책을 이끈 영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화친론자인 영류왕이 고구려의 27대 임금이 되었다. 영류왕은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내정을 정비하기 위하여 화친에 동의하였다. 고구려와 당의 불안한 화친은 당나라의 정세변화에서 변화의 서막으로 작용하였다. 당고조 이연의 둘째인 당태종 이세민의 군사변란을 일으켜 황태자인 형과 아우를 죽이고 부왕을 밀어내고 황제가 되었다.


당태종과 안시성 전투


당태종 이세민은 동돌궐을 공격하여 이듬해인 4월에 멸망시켰다. 이른바 고구려의 서북방 방패를 없앤 것인데 실크로드 유역의 토욕혼을 공격하여 복속시켰으며 고창을 복속시켰다. 고구려는 이제 동돌궐,고창,토욕혼등 북방 기마민족 동맹세력을 모두 잃었다.



당태종은 631년에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쌓은 경관을 허물라고 요구하였는데 영류왕은 당나라의 침략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연개소문을 시켜 부여에서 요동반도에 이르는 곳에 천리장성을 쌓았다.


양만춘의 공을 기리는 한국기술로 만든 구축함 양만춘함


642년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대당화친론을 주장한 영류왕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내세웠는데 당태종 이세민은 드디어 고구려를 침략할 수 있는 명분을 찾고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그나라의 임금을 패악무도하게 시해하고 그 나라의 신하를 혹독하게 박해하고 있어 이번에 북경와 유성의 땅을 순행하고 요와 갈석에서 죄를 묻겠다고 반포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의 침입로


이렇게 해서 당나라의 고구려 침략이 시작되었는데 645년 1월에 고구려를 침략한 당나라의 정예 30만 대군 백암성과 개모성을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공격하였으나 양만춘의 반격에 발이 묶였고 당태종은 끝내 패주하여 달아나다 양만춘이 쏜 화살에 눈이 맞았다고 전해진다. 당태종은 임종에 가까웠을 때 만일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고구려 원정을 말렸을 것이라고 하면서 후회했다고 훗날 역사는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