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조선 역사

인조반정의 명분 과연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명나라에 의리를 저버리는 일인가? 요즘 한창 재평가 되고 있는 광해군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서인 세력을 등에 업은 인조는 광해군이 명을 배신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이유로 반정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 인조반정인데요 인조반정을 일으킨 세력이 내세운 서른가지 이상되는 명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광해군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저버렸으니 바로잡는다는 의미의 '친명배금' (명나라와 친목을 도모하고 금나라와 멀리한다.) 이었고 두번째는 선조의 정비인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그의 소생인 영창대군을 살해하여 인륜을 어겼다는 것 하여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첫번째로 이야기한 친명배금은 갔다 붙이기 식의 주장이었습니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주장인데 어차피 명이든 후금이든 다른 나른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광해군을 몰아낸 능양군의 인조반정 그리고 김개시,홍제천의 여러가지 이야기 세검정은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세검정도를 보고 다시 복구되었습니다. 인조반정과 홍제천 홍제천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구기동을 지나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 홍제천(弘濟川). 삼각산(북한산)의 수문봉, 보현봉, 형제봉에서부터 흐르는 물줄기가 소담하게 흐르는 서울 서대문구의 자랑이자, 동네 주민들에겐 언제나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산책로이자 자전거 길이자 서울 시민들의 쉼터입니다. 이 홍제천에는 역사적 이야기가 숨쉬고 있는데 바로 모두가 알고있는 인조반정때 이귀,김유등이 모여 광해군 폐위를 모이하고 칼을 씻어 목숨을 걸고 인조반정의 결의를 맹세하였다고 하여 누각이름이 세검정으로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홍제천 병자호란의 슬픈사연 조선 최고의 무능한 왕으로 평가되는 인조..
익선관을 쓰지 않았던 막내 하성군이 나라의 주인이 되다. - 선조 이야기 - 중종의 능인 정릉익선관은?익선관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왕이 평상복인 곤룡포를 갖추고 정무를 볼 때 쓰던 관입니다. 왕만 착용했기 때문에 왕의 상징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순회세자의 죽음과 하성군명종은 인순왕후 심씨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 순회세자는 열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순회세자가 세상을 떠나고 후사를 고르게 되는데 후사의 대상을 중종의 손자 중에서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당시에 명종의 왕비인 단경왕후에게는 소생이 없었고 장경왕후의 아들인 인종에게도 후사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경빈 박씨는 아들 복성군과 함께 사약을 받아서 죽었고 희빈 홍씨의 아들 봉성군도 역모에 연류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이제 남은 손자는 창빈 안씨의 둘째 ..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의 내용과 무능한 왕 선조 서애 류성룡은 누구일까?이순신을 천거하여 6품계를 뛰어넘는 승진을 시킨 사람입니다. 선조는 류성룡을 신뢰하여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인사로 임진왜란 1년전에 신의 한수를 두게되죠. 보통 교과서에서는 선조를 보좌하고 이순신을 도왔다고 나오는 정도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당시 중심적인 능력있는 재상으로 전해집니다. 정치 뿐만 아니라 당대 학자중 최고로 꼽혔었고 실물에도 밝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경세가였습니다. 서애 류성룡의 이력은?생년 : 류성룡은 중종 37년부터 선조 40년까지 생존했으며 의성에서 태어났습니다.(안동출생) 이력 : 1566년 25세 문과급제 1572년 31세 홍문관 수찬 1591년 50세 우의정 겸 이조판서 1592년 51세 영의정(당일파직), 도체찰사서애 류성룡은 하회마을 서쪽의 ..
궁궐 건축 사업으로 민생 황폐의 길을 걸은 광해군 광해군의 궁궐 건축사업민생을 황폐하게 만들어서 비난을 받은 대규모 궁궐 건축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던 것일까? 이는 기본적으로 와권강하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광해군은 궁궐 건축 사업에 병적으로 매달렸다고 한다. 광해군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금이나 은을 받고 관직을 팔았고 심지어 석물이나 목재까지 징발했다. 서북 변방을 방어하기 위한 재정 지원이 시급하고 궁궐 건축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전국에 파견된 조도사의 작폐가 극심하다는 지적이 빗발치는데도 궁궐 건축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 조선왕조는 개국당시 궁궐 두개를 지었다. 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제1 궁궐을 정궁 제2 궁궐을 이궁이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의 1궁은 경북궁이며 2궁은 창덕궁이었다. 성종은 재위 기간 중 청상과..
호학,호불,패도의군주 세조 수양대군 세조는 권신을 토벌하여 사직을 안정시키는데 리더쉽을 보여준 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전에 관상 이라는 영화에 잔인한 살육을 일삼는 왕으로도 출연했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세조인 수양대군의 리더쉽에 대해서 논해보려고 합니다.세종과 대비대는 세조의 정치세조는 아버지인 세종의 '경연정치'와는 대비되는 정치를 했습니다. 결단력도 있었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그릇도 컸는데 술자리에서 신하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린게 그렀습니다. 정인지는 술취하면 세조에게 반말을 썻다고 합니다만 그럼에도 별탈이 없었습니다. 공신을 위로하는 주연이 자주 열렸는데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에서도 술자리가 이어졌고 한명회,신숙주등 최측근들만 그자리에 초대받았다고 합니다. 조선은 어떻게 풀이하면 왕의 나라에 ..
조선시대 성격과 실패의 원인 그리고 깨닳지 못한 여섯가지 교훈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이며 1392년부터 1910년 마지막 임금인 순종에 이르기 까지 27명의 왕이 518년간 승계하며 지속되었습니다. 당시 정세는 권문세족이 날뒤는 가운데 정치는 약화되고 왕권은 쇠퇴되었으며 이민족의 침입이 되는등의 혼란은 자주 발생하였는데 태조인 이성계는 홍건적 및 왜구를 물리쳐 명성을 높여 정계에 발을 딛었고 신진사대부인 정도전,조준등과 손을 잡고 위화도회군을 단행하여 왕위에 올라 나라를 개창하였습니다. 조선의 성격과 실패의 원인 조선의 문명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조선은 과거제도를 통해 양반 관리를 선출하는 관료사회였으며 주자학을 바탕으로 하는 문치주의와 법률과 무력이 아닌 교화로 다스리는 인본정치, 왕권과 신권이 권력을 공유하며 균형을 이루는 시..
정조의 시대는 조선후기의 르네상스 요즘 TV에서는 조선초기부터 시작해서 후기까지 사극 드라마에 조선시대 역사가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조선이라 하면 몇몇 생각나는 왕들이 있긴하나 그중에 이산이라고 하는 정조가 특히나 떠오릅니다. 정조의 시대가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라고 생각해 이부분에 대해서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르네상스라고 하면 학문이나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그리스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부흥시켜 새문화를 창출해내는 운동이라 말할 수 있는데 범위가 건축,미술,사상,문학등 여러가지 부분에 걸쳐 새문화의 재창출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로마제국의 중세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라고 부르는데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야만시대를 극복하려 르네상스,문화운동을 중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