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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국드라마

넷플릭스 명작 블랙미러 시즌3 4화 샌주니페로 소개 및 해석


이번에는 블랙미러 시리즈 중 3시즌에 4화인 "샌주니페로"를 소개해 드립니다. 블랙미러 시리즈는 영국드라마로 미디어에대한 부작용이나 환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일단 샌주니페로편은 블랙미러에서 손꼽을만한 작품입니다. 2017년에 에미어워드에서 TV영화 작품상과 미니시리즈 드라마 스페셜 부분 각본상을 수상했던 작품이기에 눈여겨볼만한 작품입니다. 블랙미러는 옴니버스 식이기에 다른 시즌을 안봐도 전혀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 개별 작품들 입니다.

블랙미러 시리즈에서 눈여겨볼만한 작품으로 아래 작품들을 못보셨다면 꼭 시청하시는걸 추천해드립니다.

블랙미러 소개 포스팅 링크

블랙미러 샌주니페로(San Junipero) 소개


샌주니페로라는 지역의 배경은 1987년이며 어느 클럽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클럽에는 처음온것같은 외형의 학생(극중 요키)은 클럽을 배회하고 있는데 시끄러운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흑인여성(극중 캘리)가 귀찮게하는 남자를 떼어놓기 위해 요키에게 도움을 청하고 둘이 친한척을 하게되어 남자를 때어놓게되고 이 둘은 친해집니다. 


캘리는 요키와는 다르게 클럽에서 즐길줄 아는 여성이었고 요키에게 밤새 같이 있자는 뉘앙스에 말을 건네는데 요키는 무서웠는지 당황하며 약혼자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비가오는 밤에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1주일뒤 요키는 다시 클럽으로 캘리를 찾아가게 되고 둘이 만나 캘리의 집으로 향하던 중 사고날뻔했는데 크게 게이치 않고 웃고 넘어갑니다. 바닷가 주변에 있는 캘리의 집으로 향하게 되고 둘이 밤을 보내게 됩니다. 요키는 잠자리를 하는것도 처음이었고 여자와 자는것도 처음이었는데 캘리는 남자와 결혼한적이 있다는 고백을 하고 여자를 좋아한다는 말도 하게됩니다.

둘이 헤어지고 1주일뒤 요키는 또 캘리를 만나러 갑니다. 하지만 캘리는 찾을 수 없었고 전에 캘리에게 추근데던 남자를 만나게되는데 그남자는 다른시대를 찾아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게 됩니다. 요키는 매주 다른시대를 찾아보게 되고 찾던 캘리를 찾게 됩니다. 시대는 2002년도였으며 캘리는 서운한말을 내뱉기 시작합니다. 캘리는 샌주니페로에서는 가볍게 즐길뿐 구차하게 다시보기 싫다는 서운한 말을 하게되고 요키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나가 건물 옥상에 앉아있게 됩니다. 캘리는 요키가 자살할까봐 걱정하게되고 요키에게 다가가 진심을 이야기 하게되고 이번기회로 둘은 절친이 됩니다.


그리고 오랜시간이 흘렀는지 캘리로 보이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있는 요키를 만나러가게 되는데 요키는 전신마비에 할머니가 되어있었습니다.

블랙미러 샌주니페로 해석

앞에 스토리가 길었습니다. 이야기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블랙미러 샌주니페로를 시청하신 뒤 제가 쓴 글을 읽어보면서 이해한것과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보면 새로운 재미가 있을겁니다.

이작품에 배경은 캘리와 요키는 이미 늙어있는 상태이며 샌주니페로는 가상의 세계입니다. 요키는 20대에 들어오면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선언했는데 가족이 반대하였고 부모와 크게 싸운후에 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되어 현재인 할머니가 될때까지 의식만 있는 상태로 요양원에 있습니다.여기에서 샌주니페로는 가상의 세계로 이시대에는 영혼을 가상세계에 업로드 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던 시기였습니다. 

가상세계에 영혼을 업로드시켜 영원히 살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죠. 샌주니페로에 주민은 바로 안락사를 통해 영혼이 업로드된 사람들이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곳에 잠시 들른 여행객이었던 것입니다.


여행객들은 이 기술에 문제가 있을 수 있기에 일주일에 5시간만 접속할 수 있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일주일뒤에 요키가 캘리를 찾을때 일주일이라는 패턴이 있던 것이었죠. 요키는 안락사를 통해 주민이 되고자 했지만 기독교인 가족이 반대하여 주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앞에서 이야기한 약혼자인 그렉은 요키를 수발하는 남자 간호사의 이름이었는데 둘이 결혼해서 보호자로서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위장결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간호사 그렉을 만나 전후사정을 듣는 캘리

캘리는 샌주니페로에 접속해서 캘리를 만나게 되고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결혼승락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요키를  안락사 하여 영원히 샌주니페로에 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캘리는 영원한 죽음을 선택했지만 마지막에 선택을 바꾸며 캘리를 만나러 영원한 삶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둘을 만나게 하기위해 로봇이 서버에 영혼을 업로드시키는 작업을 보여주며 이 스토리는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시작에 나온 클럽이름은 터커, 영혼을 업로드하는 회사이름도 터커 ^^


많은 발전을 이뤄 사람의 영혼을 가상의 세계에 업로드하는 기술, 이 기발한 생각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블랙미러 시리즈를 보며 영드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영국드라마에 명작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며 미드와 영드를 번갈아가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상공간이라는 세계라고 하면 매트릭스의 여파로 대부분 비슷한 스토리를 만들어냈으나 샌주니페로편은 새로운 차원에 접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못보신 분이라면 꼭한번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Choi's Family Story.Orangeline Blo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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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s Family Story 에서는 건강한 리뷰,여행문화를 선호하는 Green,Clean Blog를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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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트릭스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