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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당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략과 안시성전투 당태종 이세민의 입상 수나라를 뒤이어 일어난 당나라는 내정을 다스리기 위하여 고구려와 화친을 구하였다. 마침 고구려에서는 강경책을 이끈 영양왕이 세상을 떠나고 화친론자인 영류왕이 고구려의 27대 임금이 되었다. 영류왕은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내정을 정비하기 위하여 화친에 동의하였다. 고구려와 당의 불안한 화친은 당나라의 정세변화에서 변화의 서막으로 작용하였다. 당고조 이연의 둘째인 당태종 이세민의 군사변란을 일으켜 황태자인 형과 아우를 죽이고 부왕을 밀어내고 황제가 되었다. 당태종과 안시성 전투 당태종 이세민은 동돌궐을 공격하여 이듬해인 4월에 멸망시켰다. 이른바 고구려의 서북방 방패를 없앤 것인데 실크로드 유역의 토욕혼을 공격하여 복속시켰으며 고창을 복속시켰다. 고구려는 이제 동돌궐,고창,토욕혼등 ..
불상의 정의와 백제 불상의 종류와 특성(삼존불,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살상) 불상이란? 깨달은 자 라는 의미를 가진 부처,붓다를 조각이란 형식으로 형상화하여 불교의 예배대상으로 삼은 것을 말합니다. 이 불상을 예배삼아 섬기며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법을 쉽게 보여주고 터득하게 하는 점에서 교화의 감동을 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옛 사람들은 부처,붓다의 형상화한 불상들에 의지하고 바램을 빌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죠. 백제의 불상 백제의 불상은 초기에는 중국에서 수입되었지만, 불교가 대중화된 6세기에 이르자 백제인들에게 의해서 직접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불상의 조형성은 사비시대 성왕의 불교중흥정책과 맞물리며 정점에 이릅니다. 백제의 불상들은 우아하면서도 날씬한 체구, 길면서 팽창된 얼굴, 부드러운 양감 등 귀족적 미의식을 보여주면서도 얼굴..
충남 부여 가볼만한곳 궁남지(서동공원),황산벌 계백장군 백제오천결사대충혼탑 얼마전에 부여에 다녀오면서 궁남지란 곳에 들렀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연꽃도 보이지 않고 추운 겨울만 담아왔습니다. 부여 가볼만한곳 궁남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궁남지의 위치는? 궁남지는 삼국사기에 백제 무왕35년 궁의 남쪽에 못을파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선인이 사는 곳을 상징하여 궁남지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이런것으로 볼때 이 연못은 백제 무왕때 만든 왕궁의 정원으로 추정되며 우리 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든 것으로 삼국 중에서도 백제가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궁남지의 주차장입니다.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겨울이라서 그런지 차가 없네요. 두세대 정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너무 추운날이라 그런지 연꽃이 피어있..
최치원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온 까닭은 시무10조(시무10책) 때문일까? 최치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최치원은 대표적인 유학생출신으로 도당유학생이라고도 합니다. 도당유학생은 신라의 골품제도 아래에서는 출세의 길이 막히자 당나라로 유학한 사람들을 말하는데요 보통은 세분류로 나뉩니다. 군인,학생,승려 세가지인데 군인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장보고라고 할 수 있죠. 승료로는 의상,표훈등이 이름을 남겼으며 학자로는 최승우,최치원,최언위가 현재 잘 알려져 있는 인물 입니다. 최치원은 12살에 당나라에 들어가 빈공과라는 과거에 급제하여 선주 율수현의 현위가 됩니다. 황소농민군의 반란이 일어나자 토벌대장이었던 고변의 추천으로 최치원은 종사관에 임명되어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지어 이름을 날라기 시작했습니다. 최치원은 황소농민군의 반란이 끝나고 신라로 귀국하여 대산군의 태수가 되는데..